비 오는 날이면 유난히 조용해집니다.
창밖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을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억이 하나둘 떠오르곤 하지요.
그 중에서도,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첫사랑의 기억은 비 오는 날 더욱 또렷해지곤 합니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2012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건축학개론>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첫사랑을 그린 로맨스가 아닙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감정,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잔잔하고도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1. 추억의 그 시절 – 아날로그의 따뜻한 온도
<건축학개론>은 두 개의 시간축을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1990년대 후반, 그리고 현재(2010년대 초반).
과거의 이야기는 대학교 1학년 ‘승민’과 ‘서연’의 첫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그 시절은 공중전화로 연락하고, CDP로 음악을 듣고, 편지와 종이 노트를 주고받던 아날로그 감성의 시대였습니다.
영화는 그 시절의 분위기와 감성을 소품 하나, 배경 하나까지 세심하게 담아냅니다.
제주도의 낡은 집, 대학 캠퍼스 계단, 그리고 비 오는 날 약속을 기다리는 장면까지—
이 모든 것이 관객들에게 추억이라는 시간 여행을 선물합니다.
2.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 – “기억은, 온몸으로 다시 겪는 거야”
"기억은, 온몸으로 다시 겪는 거야" 대학 1학년 승민(이제훈)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조별 과제를 통해 서연(수지)을 처음 만납니다. 무심한 듯 다정한 서연에게 점점 끌리게 된 승민은 함께 제주도 집 설계를 하며 더욱 가까워지고, 서로를 의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감정 표현에 서툰 승민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두 사람은 결국 엇갈리게 됩니다.
15년 후, 건축가가 된 승민(엄태웅) 앞에 과거의 서연(한가인)이 나타납니다. 그녀는 제주도의 오래된 가족 집을 다시 짓고 싶다며 그에게 설계를 의뢰합니다. 그렇게 과거의 감정을 잊은 줄 알았던 두 사람은 다시 마주하게 되고, 당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감정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은 매우 깊습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 미숙했던 감정,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어색함과 후회, 그리고 현재의 삶 속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까지—이 모든 것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3. 주인공들과 배우의 싱크로율 – “첫사랑의 얼굴을 만든 사람들”
"첫사랑의 얼굴을 완성하다" 《건축학개론》은 캐스팅 면에서도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각 인물이 가진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낸 네 명의 배우—이제훈, 수지, 엄태웅, 한가인—의 조화는 그야말로 완벽했습니다.
▶ 수지: 국민 첫사랑의 탄생 이 작품은 수지에게 배우로서의 첫걸음이자 인생작이 되었습니다. 아이돌 그룹 미쓰에이 활동을 병행하던 그녀는 서연 역을 통해 배우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졌고, 이후 ‘국민 첫사랑’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수지는 당시 90년대 여대생 특유의 도도함과 감성, 그리고 처음 사랑을 마주했을 때의 설렘을 매우 자연스럽게 표현했습니다.
▶ 이제훈: 서툰 사랑의 얼굴 승민 역을 맡은 이제훈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내성적인 청춘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연기했습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고, 마음을 표현하려다 늘 타이밍을 놓쳐버리는, 그런 ‘그 시절의 남자’ 모습이죠.
▶ 엄태웅 & 한가인: 시간이 지나도 남는 감정 15년 후, 어른이 된 승민과 서연 역을 맡은 엄태웅과 한가인은 성숙함 속에 남아 있는 감정의 잔상을 섬세하게 표현해냅니다. 특히 한가인의 눈빛 연기와 절제된 대사는 많은 이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넌 날 왜 그렇게 만들었어?”라는 한마디는 영화의 감정을 가장 응축한 대사로, 긴 시간 동안 관객들의 가슴에 남았습니다.
4.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 – “사랑은 끝났어도,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사랑은 끝나도 감정은 남는다”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대한 미화나 회상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비록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일지라도, 그 감정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소중한 조각이 되었다고."
영화는 한 편의 고백이자 회복의 과정입니다. 과거에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다시 마주하고, 그 시절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지금의 내가 되어가는 이야기.
📌 “기억은, 온몸으로 다시 겪는 거야.” 이 대사는 단순한 회상이 아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마음속에서 그 감정을 '살아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비 오는 날, 빗소리와 함께 그 감정이 다시 몸을 타고 내려오는 느낌. 그래서 이 영화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5. 에필로그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방식 《건축학개론》은 사랑의 이야기이자, 성장의 기록입니다. 첫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경험을 통해, 각자의 가슴 속에 묻어둔 감정을 꺼내 보게 만드는 영화. 비 오는 날 그 영화를 떠올리는 이유는,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놓인 감정의 다리를 건너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마음 한켠에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계신가요? 혹은, 전하지 못한 말이 아직도 남아 있나요? 그렇다면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건축학개론》을 다시 한 번 꺼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방식 그대로—조용하고, 서툴고, 하지만 진심이었던 그 마음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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